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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얘기

당신이 몰랐던 건축과 삶의 관계

by nutrient 2022.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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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몰랐던 건축과 삶의 관계

건축은 사람들의 삶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인간의 심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건축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한다. 단순히 건물만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머무는 모든 ‘공간’에 관한 얘기다. 

현대인들은 과거에 비해 가족 간의 대화가 단절된 편이다. 왜 그럴까? 여러 가지 사회적 이유가 있겠지만 건축에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현대인들이 사는 흔한 아파트의 모습을 한번 상상해보자. 아파트에 들어가면 복도를 지나 거실이 나오는데, 거실에서 방으로 들어가면 방의 창문은 거실이 아닌 바깥쪽으로 나 있다. 일단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으)면 거실과의 관계는 단절된다. 전문가들은 이런 공간 구성을 나무에 비교해 ‘수목적 관계’라고 말한다. 굵은 가지에서 잔가지로 갈라질수록 나뭇가지가 나눠지고 그 끝이 다시 연결되지 않는 나무와 비슷해서다.

이런 공간은 구성원의 사생활을 보장하기에는 효율적이지만 가족의 유대를 강화하는 데는 좋지 않다.

외부 공간인 마당을 거쳐 실내 공간인 집 안으로 들어갔다가 방에서 창문을 열면 다시 마당과 연결되는 전통 한옥과는 매우 다르다. 만일 방마다 거실 쪽으로 창문이 나 있으면 소통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

문을 여는 것과는 다르다. 문은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열고 들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창문은 서로 바라볼 수만 있고 건너갈 수는 없는 건축 요소다. 창문으로 연결된 공간은 적당한 사생활을 유지하되 느슨하게 관계를 형성해주는 장치다. 안방에서 책을 읽는 부모가 거실 너머로 자녀 방의 창문을 통해 아이가 공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어떨까? 


건축이 중요한 이유는 꼭 건물 때문만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공간’을 제공하기 때문에 삶과 밀접하다. 선사시대 동굴에 모여 살던 사람들이 모닥불을 피우고 둘러앉은 곳도, 현대인들이 집 안에서 모여 TV를 보는 거실 같은 곳도 모두 그런 의미를 담은 공간이다. 경제와 문명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의 자의식이 강해지고 개인주의가 발달하면서 자신의 욕구를 채우려는 욕망이 커진다. 그 와중에 ‘사적인 공간’에 대한 수요도 점점 늘어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국토 면적이 좁아 공간적으로 제약이 있다. 소득이 높아질수록 사적인 공간에 대한 욕구는 높아지지만 실제 사람들의 주거 환경은 그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나라는 성인이 되어서도 결혼 전까지는 부모와 사는 경우가 많아 친구를 편하게 집으로 초대하기 어렵다.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자기만의 거실이나 부엌이 없다는 의미다. 외국에서는 친구나 커플들이 집에서 만나 함께 요리하고 빨래하고 비디오를 보며 데이트를 한다. 어려서 독립하기 때문에 이런 생활이 가능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집이 작거나 부모와 사는 경우가 많은 나라에서는 이런 문화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는 개인의 거실을 대신하는 공간이 많이 생겼다. 카페 또는 숙박업소가 바로 그런 곳이다. 개인의 욕망을 실현할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노래방이나 PC방, DVD방 등 방중심 문화도 생겼다. 한국의 밀폐적인 방 문화는 우리나라 사람이 유난히 그런 것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공간적 제약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관광객이나 새로 이사 온 사람이 그 도시에 애착을 갖기 시작하는 시점은 언제일까? 건축가들은 “그 도시의 도로망을 완전히 이해하기 시작할 때”라고 말한다. 내가 지금 어느 위치에 있는지 모르면 주변을 즐길 여유가 없어 경계심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럴 때 사람들의 불안감을 없애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랜드마크다. 뉴욕이나 보스턴을 예로 들어보자. 도로 위의 사람들에게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과 존 행콕 타워가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한다.

역사가 오래된 유럽의 도시들도 마찬가지다. 도로망이 거미줄처럼 엮여 있어 길을 잃기 쉽지만 조각상이나 분수, 광장 같은 랜드마크가 곳곳에 포진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방문하는 사람도 도시 전체의 이미지를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 길들은 모두 햇볕이 잘 드는 길과 연결된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지하 쇼핑몰은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 코엑스를 예로 들어보자. 지하 쇼핑몰에서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하늘이 아니라 2.7m 높이의 복도를 비추는 형광등이다. 어디서나 잘 보여 행인에게 이정표가 되어줄 랜드마크 건물도 없다. 코엑스에는 무역센터 등 랜드마크가 될 건물이 충분하지만 지하 쇼핑몰을 걷는 사람들은 그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만약 코엑스 쇼핑몰이 지하가 아니라 적당히 오픈된 거리에 들어섰다면 어떨까? 방문객들은 오픈된 공간에서 훨씬 기분 좋게 골목을 누비며 쇼핑하고 차를 마실 수 있다.

일각에서는 바깥으로 나오면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아 사람들의 방문율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적당한 온도에서만 쇼핑한다면 명동이나 가로수길을 찾는 사람이 한여름 또는 한겨울에도 많은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tvN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 2>로 유명세를 탄 건축가 유현준은 “지하 쇼핑몰 중간중간에 햇빛이 들어오는 공간을 만들고 지상층과 유기적으로 연결해주면 쇼핑이 더욱 편리해질 것”이라고 조언한다.


유럽의 도시에는 유명한 광장이 있다. 그 광장들은 대개 두 가지 법칙이 있다. 랜드마크가 될 만한 건축물이 있고, 광장 주변에 다양한 가게가 있다는 것이다. 유명한 광장 역시 인위적인 건축물로서의 가치가 아니라 사람이 모이는 ‘장소’로
서 가치가 있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광화문광장을 보자. 제법 잘 조성되어 있지만 아직 그곳에서 다양한 활동이 벌어지거나 사람들이 많이 찾지는 않는다. 종종 시위 장소로만 활용될 뿐이다. 

건축가 유현준은 이에 대해 “딱히 할 일도, 갈 곳도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광화문광장은 세종대왕 동상이나 광화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좋다. 하지만 바람 불고 자동차 소음이 심한 그곳에서 사진 한 컷 찍고 나면 딱히 다른 할 일을 찾기 어렵다. 넓은 광장은 만들었지만 그 안에 별다른 콘텐츠를 채우지 못해 빈 공간이 되었다는 의견이다.

어떤 이들은 우리나라에 광장 문화가 없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과거 장터가 열리면 사당패들이 공연하고,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은 그것을 구경하며 즐겼다. 김홍도의 그림에도 씨름판 주변에 엿 파는 아이가 등장하는 등 여러
가지 광장 문화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광장이 없었던 게 아니라 자동차 도로 위주로 길이 개편되면서 속도감 있는 길로만 발전한 것이다. 유현준 건축가는 광화문광장이 더욱 사랑받는 장소가 되려면 세종문화회관 앞이나 미국대사관
앞길에 1층에 앉아 광장을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식당이나 카페가 많이 생겨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머물 만한 공간이 있어야 광장에 생명력이 생긴다. 

우리은행 TWO CHAIRS웹진 VOL.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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